[유럽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 무세이온의 과학자들

시대순으로 보면 기원전 300년경에 활동한 에우클레이데스가 가장 빠르지만 그가 내놓은 『 기하학 원론 』(원제 stoicheia, 영어로는 elements)는 2천년 이상 수학 분야를 지배하고 있는 책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 다음으로 지성인으로 많이 읽힌 책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기록된 수학 지식은 그가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세상에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탈레스, 피타 고라스 같은 철학자들의 연구를 총 정리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지식을 분류하고 전개한 형식과 구조가 독창적이어서 후대의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높이 모신 것입니다. 세계 최초로 지구의 크기를 측정해서 유명한 에라토스테네스는 리비아 키레ー네 출신입니다. 기원전 246년부터 활동하던 그는 도서관 관장했다. 거기에 있던 수많은 파피루스를 읽고 당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지식 보유자였답니다. 자신을 스스로”로고스를 사랑하는 더 philologos”이라고 부를 만큼 다재한 학자였습니다. 오늘은 수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 역사학자, 철학자인 시인이자 운동 선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업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지구의 둘레를 잰 것입니다. 당시 이미 지구는 둥근 존재라는 것이 알려진 것이 대단하네요. 서기 2세기에 활약한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천문학의 과제를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하고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천재설 모델이지만 그가 남긴 ” 위대한 책”을 의미한다”알마게스토(almagest)”은 이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탈레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자연 과학의 연구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의 주장”덴도 설”은 중세를 거치는 우주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학설이었다. 그런데 앞서”지동설”즉 태양 중심적 세계관을 벌린 인물이 있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 전반에 살던 사모스 출신의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기원전 310~230년 추정)이었습니다. 그는 지구가 자전축을 중심으로 돌면서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후에 코페르니쿠스가 채택하고 근대 천문학의 길을 열었던 바로 그”지동설”이었습니다. 그는 일종의 가설을 세웠는데. 이를 전제로 세계를 볼 때 수학적으로 보다 세밀하고 확실한 질서를 보인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경험에 의한 근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태양은 아침마다 동쪽에서 뜨고 저녁에는 서쪽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태양이 아침 올라가라고 해야겠어요? 이런 자연스러운 인간의 의식을 뒤집을 만큼 논리적인 설명을 제시할 수 없었습니다. 또 지구가 하루에 1회씩 자전한다는 구체적 근거는 발견하지 못했어요. 아마 현대인도 학교에서 배우지 않으면, 그것을 믿지 않았을겁니다 현실 생활에서는 전혀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죠. 결국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 중심 천문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기한 지구 중심 가설에 졌어요. 더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생각이 잘 정착한 것입니다. 그의 설명은 천체 관측 기술이 부족하던 시절, 눈으로 볼 수 있는 행성의 이동을 설명하실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계 천체는 달·수성·금성·태양·화성·목성·토성의 순서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의 관점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여러 행성이 순행과 후행을 거듭하다 보니 이를 해석하는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행성이 있는 중심을 에둘러서 주전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했는데 이것이 무려 80개에 이를 정도로 복잡했다. 물론 오늘은 지구 중심이 아니라 태양 중심에 행성이 위치하고 있는 것을 초등 학생도 배우지만 당시로서는 반박하기 어려운 멋진 설명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계속될 천문학은 프톨레마이오스를 거쳐서 중세 유럽과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1400년 동안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시대순으로 보면 기원전 300년경 활동한 에우클레이데스가 가장 빠르지만, 그가 펴낸 『기하학 원론』(원제 stoicheia, 영어로는 elements)은 2천 년 넘게 수학 분야를 지배하고 있는 책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 다음으로 지성인들에게 많이 읽힌 책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기록된 수학 지식은 그가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세상에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탈레스, 피타고라스 같은 철학자들의 연구를 총정리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을 분류하여 전개한 형식과 구조가 독창적이었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높이 숭상했던 것입니다. 세계 최초로 지구 크기를 측정해 유명한 에라토스테네스는 리비아 키레네 출신입니다. 기원전 246년부터 활동하던 그는 도서관 관장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많은 파피루스를 읽고 당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지식 보유자였다고 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로고스를 사랑하는 더 philologos라고 부를 정도로 다재다능한 학자였습니다. 오늘날 수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 역사학자, 철학자이자 시인이자 운동선수였다고 합니다. 그의 업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지구 주위를 잰 것입니다. 당시 이미 지구는 둥근 존재라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 대단하네요. 서기 2세기에 활약한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천문학 과제를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하여 유명해졌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동설 모델인데, 그가 남긴 ‘위대한 책’을 뜻하는 ‘알마게스트(almagest)’는 이들을 담고 있습니다. 탈레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자연철학 연구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의 주장 ‘천동설’은 중세를 거치면서 우주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학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앞서 ‘지동설’ 즉 태양중심적 세계관을 넓힌 인물이 있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 전반에 살았던 사모스 출신의 아리스타르코스(기원전 310230년 추정)였습니다. 그는 지구가 자전축을 중심으로 돌고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나중에 코페르니쿠스가 채택하여 근대 천문학의 길을 열어준 바로 그 ‘지동설’이었습니다. 그는 일종의 가설을 세웠는데요. 이를 전제로 세상을 볼 때 수학적으로 더 세밀하고 확실한 질서를 보여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경험에 의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태양은 매일 아침 동쪽에서 뜨고 저녁에는 서쪽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해가 아침에 뜬다고 하죠? 이러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의식을 뒤집을 만큼 논리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 지구가 하루에 한 번씩 자전한다는 구체적인 근거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현대인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면 그것을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실생활에서는 전혀 인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 천문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기한 지구중심 가설에 졌습니다. 더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생각이 확고히 자리 잡은 것입니다. 그의 설명은 천체 관측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 눈으로 볼 수 있는 행성의 이동을 설명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태양계 천체는 달·수성·금성·태양·화성·목성·토성 순으로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 관점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여러 행성이 순행과 후행을 반복했기 때문에 이를 해석하는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행성이 어떤 중심을 가지고 도는 주전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했는데 이게 무려 80개에 달할 정도로 복잡했습니다. 물론 오늘은 지구 중심이 아닌 태양 중심에 행성이 위치해 있다는 것을 초등학생들도 배우겠지만 당시로서는 반박하기 어려운 훌륭한 설명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이어지는 천문학은 프톨레마이오스를 거쳐 중세 유럽과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1400년 동안이나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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